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인 유수연 작가님 인터뷰🎙️by 에디터 윤성민

신춘문예 공모 결과가 나온 후련섭섭한 1월입니다. 1월 인터뷰에서는 신춘문예 당선 시인을 모셨습니다. 유수연 작가님은 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 비주얼 문예지<Motif>를 창간했고 현재는 작가의 글쓰기를 돕는 플랫폼을 준비중이며 곧 런칭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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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처음 시를 쓰게 되셨나요? 제가 다른 친구들한테도 얘기했는데 제 나이 때 시를 접하는 방식이 의외로 시집이나 서점 같은 책이 아니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그냥 티브이에서 어떤 연예인이 시를 낭송을 했는데 그 시가 참 좋다는걸 느꼈고, 이렇게 다른 미디어를 통해 먼저 배웠고. 그 다음에 시집을 읽게 됐고, 또 학교에서 사생대회를 하니까 백일장에도 참여를 해보고 창작의 재미를 알아가던 과정 중에 예술고등학교에 문예착장학과가 있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시험을 보고 거기에 입학하게 됐고, 거기에서 처음으로 입시제도라는 것, 문학 특기자 등등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고 그 안의 루트가 있으니까 거기에 순응해가면서 시인이 되고자 하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계속 창작을 이어온 거죠. 지금까지.

그러면 처음 생각하시게 된 건 중학교때부터인가요? 네. 그런데 더 웃긴 건 제가 예고를 입학했을 때 몇몇 친구들은 중학교때부터 예고 입시를 준비했던 친구들도 있었어요. 중1때부터 시를 학원이나 강의를 통해 배웠던 거죠. 오히려 제가 중3 무렵에 시를 배웠던 게 특이한 케이스였던 거고, 또 제가 04년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안양예고에 영재원이라는 곳도 있어서 중1 때부터 영재원에 입학해서 다른 중학교를 다니면서 방과후에 안양예고 영재원에 와서 문창을 배우고 안양예고에 입학을 하고 문학특기자로 문창과 대학교를 가는 루트를 밟는 학생들이, 00년 이후부터의 친구들은 그런 학생들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영재원에 입학하기 위해서 초등학교때부터 글을 쓰는 친구들도 있죠. 그런데 대체로 이 초등학교 학생들의 부모님이 문창특기자 1세대인 경우가 있어요.

영재원은 정원이 어떻게 되나요? 기수마다 3~4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주위에 보면 수원에서 안양까지 와서 수업 듣기를 반복하는 친구도 있고. 그 친구는 중학교 끝나고 수원에서 안양까지 와서 수업 듣고 또 수원으로 돌아가고. 그 친구는 지금 고3인데 따지고 보면 안양예고 관련해서 6년을 산 거예요.

예고에서는 수업을 어떤 식으로 진행하나요? 대학교 문창과 수업이랑 비슷한데 특목고이기 때문에 일반 교과 시간, 정해진 교과 시간들이 있어요. 대다수는 실기 시간. 실기 시간이라고 하면 문창과는 특별한 방식이 있는 건 아니고 각 실기실에 한 선생님당 열 명 정도씩 시 파트 두 개, 소설 파트 두 개, 수업 가르치고 창작하고 합평 받고. 그리고 대회를 준비하고. 이런 식으로 진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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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가르치시는 선생님들도 다들 작가분들이신가요? 대체로 작가분이시고요. 제가 다닐 때는 좀 특이하게 안양예고 졸업생이시면서 작가가 되신 분들이 꽤 있으셨고. 지금은 더 많아지셨죠. 예전에는 아예 작가로 등단하셨던 시인들이나 소설가분들이 있으셨고, 안양예고 문창과가 전국 문창과 중에 역사가 두 번째로 깊거든요. 첫 번째 서라벌 예대 문창과, 그게 중앙대 전신이죠. 그 다음이 안양예고인 게 그때 서라벌 예대 문창과를 졸업하신 분들이 안양예고에 오셔서 문창과를 만드셨어요. 제가 27기고 지금 거의 40기에 다다를 정도로 역사가 긴 거죠.

예고 얘기를 좀 더 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예고가 문창이 전국에 딱 두 개가 있는데 원래는 안양예고에 먼저 있었고 이걸 벤치마킹해서 많이 키웠어요. 특기자가 부활했을 때 문창과에서 꽤 좋은 대학을 많이 갔어요. 그런데 오히려 역량이 미달이 돼서 폐지하는 경우도 생겼고. 그래도 상 받아서 가는 대학이 많아지니까. 부산에서도 벤치마킹을 해서 만들려고 했었고. 옥천에서도 실사가 오는 거예요. 정지용 작가의 고향이기 때문에 옥천고에서 문예반을 만들려고 했었고. 그렇게 많은 시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고등학교라고 한다면 안양예고, 고양예고밖에 없어요. 그런데 보여지는 학교는 안양예고, 고양예고 뿐이지만 혼자 쓰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도 실제로는 과외를 받는 경우가 많아요.

창비학당이나 읻다 같은 것도 같이 진행을 하는 걸까요? 그쪽은 거의 성인 위주고. 왜냐하면 고등학생 애들은 대입과 관련된 입시제도 목적이 더 강하기 때문에 대회에 집중하게 되고, 창비학당이나 읻다는 오히려 성인반 클래스 느낌이 강해요. 문창과 대학을 가면 문창은 2년, 3년 배우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자기 자신의 수련이죠. 우리가 뭐 헬스장 무게 치는 법이라는 걸, 기구를 매일 새롭게 배우는 건 아니잖아요. 자세를 배우는 거기 때문에. 예고에서 입시가 끝나고 대학에 입학해서 문창과 교육을 받으면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루즈함을 느끼고 그래서 자기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창비학당이나 읻다에 나가는 개념인 거죠. 등단 목적으로 하는 곳도 연다면 열 수는 있는데 좀 눈치가 보이죠. 차라리 시를 보여주면서 합평해주는 방식에서 노하우를 얻는 게 좋죠. 지방은 등단자를 만나기가 힘들어요. 창비학당이나 읻다 같은 곳이 아니면 시인을 만날 방법이 없는 거고 따로 정보를 얻기도 어렵고. 그래서 수업을 하시는 그 시인님한테는 평범한 일이고 심사를 봤을 때 겪었던 일인데도 큰 정보가 되는 거죠. 수업 자체가 등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등단을 하는 사람이 나올 확률이 높아지는 거죠. 그리고 최근에 제가 스쿨 관련해서 일본 시스템에도 관심이 많은데요. 일본 등단제를 보면 한국이랑 똑같은데 매년 무슨 무슨 상들이 있는데 그게 한국의 신인상 같은 거죠. 그런데 일본에서도 작품들이 부족하다 해서 읻다 같은 스쿨을 열어요. 대신 애초에 지원자부터 심사를 보는 거예요. 그래서 심사를 보고 정말 메이드를 해서 한 명의 작가를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이 방식이 따지고 보면 좀 괜찮거든요. 편집인들이 달려들어서 우리가 정말 키울 사람을 교육을 하고 밀어주고 해서 바로 작품을 내고.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방식이 등단제도라는 것과 연관지어 생각했을 때 상징적 의미가 있어서 작품의 공동창작이라는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거죠. 사실 읻다나 창비학당이 그런 개념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그 정도까지는 하지 않고 있죠. 자신의 출판사를 뒷받침할 콘텐츠 공급자를 만든다는 아이디어 단계는 아직 가지 않은 것 같아요. 교육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등단제의 다른 모습으로 바라보고 계신 건 같진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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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과 창작 지원을 위한 예술인 증명 관련해서. 예술인으로 인정을 해주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요? 분류를 뭘로 할 거냐도 중요해요. 예전에는 웹진에 올라오는 것도 인정을 안 해줬거든요. 예술인 등록에서, 제가 예술인 등록을 2017년에 할 때는 일주일 만에 났어요. 그때는 폭이 좁았으니까. 인정 범위가. 저는 깔끔하게 신춘, 그 다음에 신춘문예 당선시집이 있으니까 시 편수도 다섯 개 딱 나오고, ISBN 나와 있고 아는 거니까 캡처 다 해서 대충 했는데도 일주일 만에 등록이 됐고, 그때 카드도 줬어요. 그런데 이번에 재등록을, 기간 5년이 지나서 재신청을 했거든요? 그런데 반려가 뜬 거예요. 봤더니 책 한 권을 인터넷 캡처로 했더니 안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화로 이걸 수정하면 반려된 단계부터 할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도 제가 신청한지 3개월이 지난 뒤였거든요. 그래서 제가 수정한지도 두 달이 넘어가고 있어요. 확인해봤더니 신청자 현황수가 시인만 만 명이에요. 만 명. 신청이 중요한 이유가 분기마다 300만 원씩 받을 수 있거든요. 3년에 한 번씩. 소득이 낮을 때 창작지원금으로 지원을 해주세요. 저는 그때 300만 원이 필요했는데 그게 안돼서 신청을 못한 거예요. 이번 상반기에라도 될지 모르겠어요. 이게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웹진도 예전에는 안됐었는데 이제는 웹진도 범위를 넓혀서 인정을 해주세요. 그러면 무엇이 예술인으로의 증명이 되는가. 어떤 게 발표냐. 연극도 그렇고 시도 그렇고. 시는 예전에는 그냥 신춘문예, 문학잡지 신인상, ISBN이 박힌, 이렇게 까다로운 기준이 있었지만. 이제는 등단의 개념과 예술인의 개념이 모호해졌어요.

저는 등단도 등단이지만 등단한 뒤에도 갱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끔 들거든요. 저는 오히려 이제 시 세 편, 다섯 편의 신춘문예가 아니라 오십 편짜리 신인상들로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한 명만 뽑을 거라면 오십 편으로 뽑고 한 권의 책을 내는 게 낫지. 세 편, 다섯 편이라는 적은 편수만으로 역량을 판단하는 게 맞는가. 그것만으로 발표도 없이 시집 계약이 된다는 건 맞지 않다고 보거든요. 막상 계약했는데 엎어진 경우도 있어요. 원고 수준이 부족해서. 많은 시인들이 등단하고 나서 청탁을 받을 수 없는 것도 차별 받는 게 아니라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있는 문예지의 수가 너무 적어서예요. 자기 시를 쓰고 있어도 청탁이 없으니까 더 시를 쓸 수 있는 채찍질이 안되고 목적의식이 결여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도 저처럼 문학특기자를 했고 목적을 가지고 한 곳만 바라보고 살다가 프로의 입장에 딱 들어왔는데 정말 아무도 안 불러주고, 그렇다고 프로답게 써 본 경험이 완전히 많은 것도 아니고. 시가 모이긴 하니까 김수영 문학상만 노리는 거예요. 그건 되자마자 바로 시집이 나오니까. 그래서 저는, 제가 세 편 내고 되긴 했지만, 신인상은 오십 편을 쓸 줄 아는 호흡을 배우면서 공모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순간의 청탁마다 한 편에 힘줘서 쓰는 경우들 있잖아요. 그 한 편들은 분명 잘 썼지만 그 시들을 모아서 시집으로 엮을 때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보이는 거죠. 읽다 보면 습작에서부터 성장해가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래도 걸리죠. 음, 아예 기획형 시집을 쓰는 방법도 있겠죠.

김수영 문학상 준비는 안하셨나요? 아뇨. 했죠. 그런데 시집이 계약이 됐으니까. 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제가 방금 말했던 게 남을 바라본 경험이 아니라 제 경험들이니까.

정말 뻔한 질문이지만 신춘문예 준비는 어떤 식으로 하셨고 몇 번 정도 내보셨나요? 잠시만요. 음, 잠시만요. 일곱 번째에 됐네요. 신춘문예에는 7년을 내본 거죠. 신춘문예는 12월 말이니까 고등학교 1학년 넘어갈 때부터 매년 냈고. 그냥 냈어요. 별로여도 상관없이. 신인상은 각 한 번씩. 분기마다 한 번씩 큰 게 있으니까. 1년에 세 번씩 낸 거죠. 제일 기본적으로 냈을 때는 그렇고. 자잘한 것들도 많지만 그건 생략하고. 세 번으로 계산하면 스물 한 번 냈네요.

당선 이후의 생활은 어땠나요? 저는 일단 군대를 전역해야 됐고, 앞선 등단 지인이 있으면 스케줄을 잘 짜줘요. 그런데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제일 첫 번째는 신춘문예라면 문화부 기자분한테 청탁을 원하시는 분이 먼저 연락을 해요. 신춘문예는 연락처를 문화부 기자분이 갖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초기에는 그분들을 통해서 연락이 많이 와요. 그래서 제일 먼저 하는 건 시로 예를 들면 문학세계사, 그 논란이 있었던 신춘문예 당선시집에서 연락이 오고, 거기에 다섯 편을 한 편에 오만원씩 받고 내고, 거기에 이메일을 적거든요? 그때부터 이제 연락을 그 이메일로 받게 되는 거죠. 또 지금은 프로세스가 깨졌지만 현대문학에서 신춘문예 당선집을 읽고 본인들이 봤을 때 좋은 작가분들을 캐치해서 3월호에 소설 몇 명, 시 몇 명 해서 신춘문예 특집을 해주세요. 거기 실리고 나면, 청탁들이 일부 오고. 이제 제일 중요한 건 현대시 11월호. 그때는 신인상들도 다 발표가 났기 때문에 현대시랑 묶어서 평론을 달거든요? 그때 이제 다음 년도까지 넘어갈 수 있느냐가 어느 정도 판가름이 되죠. 대체로 거기까지 잘 해내고 나면, 사회생활같이 어디 나가서 얼굴도 비추고 하면 그때부터는 좀 더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죠.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문학 모임 같은 걸 하기 자제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신인분들은 청탁 관련해서도 더 어려우실 것 같아요.

말씀해 주셨듯이 현재 신춘문예 당선시집이 나오지 않는 상황인데 그러면 최근에 당선되신 분들이 청탁 관련해서 신춘문예 신문사에 실리는 당선자 소감에 이메일을 적는 방법밖에 없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대체로 출판사 분들은 문화부 기자분들을 아시기 때문에, 만약에 몰라도 문화부로 연결 부탁드린다고 전화하면 되고. 최근에 창비에서 시를 발표했었는데 창비에서는 에이전시처럼 편집자분이 전화를 주시더라고요. 이런 출판사에서 청탁 전화가 왔는데 번호를 알려드려도 될까요? 라는 식으로. 나이 드신 분들은 시집이 나온 곳에 전화해서 청탁하고 싶다고 하시고. 청탁의 방식은 그렇게 문자로 연락을 받아서 정중하게 문의 주시는 방식도 있고. 젊은 시인분들은 DM으로 직접 개인적으로 청탁드리는 방법도 있고. 그 다음에 가장 핵심적인 청탁 방법은 지인한테 물어봐서. 청탁은 이런 방식으로 돌아가요. 또 한 가지는 공모 방식도 있죠. 독립문예지 같은 곳은. 편수는 많이 들어오는데 좋지 못한 작품도 많거든요.

신인분들이 당선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쭤보려고 했는데 많은 대답이 됐네요. 왜냐하면 당선시집이 없어진 시기가 코로나랑 맞물려서 많이들 힘드실 것 같았거든요. 예술인 등록을 위한 기준인 다섯 편을 ISBN 받으면서 발표하기가 생각보다 힘들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때 시인들이 신춘문예 당선 시집에 반대하고 기고를 안 했을 때 신인 특집 호를 저희 잡지인 모티프에서 만들었거든요. 그때 이슬아 작가님도 같이 하셨고. 그때 반응이 좋았어요.